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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리뷰 61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 최승자

1어디까지갈수있을까 한없이흘러가다보면나는밝은별이될수있을것같고별이바라보는지구의불빛이될수있을것같지만어떻게하면푸른콩으로눈떠다시푸른숨을쉴수있을까어떻게해야고질적인꿈이자유로운꿈이될수있을까     2어머니 어두운 뱃속에서 꿈꾸는먼 나라의 햇빛 투명한 비명그러나 짓밟기 잘 하는 아버지의 두 발이들어와 내 몸에 말뚝 뿌리로 박히고나는 감긴 철사줄 같은 잠에서 깨어나려 꿈틀거렸다아버지의 두 발바닥은 운명처럼 견고했다나는 내 피의 튀어오르는 용수철로 싸웠다잠의 잠 속에서도 싸우고 꿈의 꿈 속에서도 싸웠다손이 호미가 되고 팔뚝이 낫이 되었다     3바람 불면 별들이 우루루 지상으로 쏠리고왜 어떤 사람들은 집을 나와 밤길을 헤매고왜 어떤 사람들은 아내의 가슴에 손을 얹고 잠들었는가왜 어느 별은 하얗게 웃으며 피어나고왜 어느 ..

충옥(蟲獄) - 장이지

어느 날 나그네가 내게 왔다. 마분지 날개를 달아매 주었다. 해바라기 꺾어들고 노래 부르며 난바다를 헤맸다. 캄캄한 밤 울음으로 빛나는 야경, 그 속의 키 작은 사람들을 보았다. 산동네 얼음 언 계단을 흰 꽃 토하며 오르내리던 가파른 목숨들을. 광막한 우주에 한 점 노래가 퍼지는 겨울이 가고, 별이 다시 꽃으로 내려와 앉는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다시 겨울이 가고, 나는 노래에 걸신들려 떠도는 조그만 제비였는제 나그네는 가뭇없이 떠나고......   얼마나 걸어야 이 무궁(無窮)의 길은 그칠까.  얼마나 더 걸어야 발이 사라지고 별이 될까 누리알 차갑게 튀는 길을 걷다가 문득 옛집에 이르러 애끊음이여. 지붕은 무너지고 아무도 없는 방에 그것이 있었다. 눈도 없고 다리도 없이 이상하게 처연한 몸부림으로. ..

도봉 - 박두진

산새도 날아와 우짖지 않고 구름도 떠 가곤 오지 않는다. 인적 끊인 곳 홀로 앉은 가을 산의 어스름. 호오이 호오이 소리 높여 나는 누구도 없이 불러 보나. 울림은 헛되이 빈 골 골을 되돌아올 뿐. 산 그늘 길게 늘이며 붉게 해는 넘어가고 황혼과 함께 이어 별과 밤은 오리니. 삶은 오직 갈수록 쓸쓸하고 사랑은 한갓 괴로울 뿐. 그대 위하여 나는 이제도, 이 긴 밤과 슬픔을 갖거니와 이 밤을 그대는, 나도 모르는 어느 마을에서 쉬느뇨?

이 시대의 죽음 또는 우화 - 오규원

죽음은 버스를 타러 가다가 걷기가 귀찮아서 택시를 탔다 나는 할 일이 많아 죽음은 쉽게 택시를 탄 이유를 찾았다 죽음은 일을 하다가 일보다 우선 한 잔 하기로 했다 생각해 보기 전에 우선 한 잔 하고 한 잔 하다가 취하면 내일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내가 무슨 충신이라고 죽음은 쉽게 내일 생각해 보기로 한 이유를 찾았다 술을 한 잔 하다가 죽음은 내일 생각해 보기로 한 것도 귀찮아서 내일 생각해 보기로 한 생각도 그만두기로 했다 술이 약간 된 죽음은 집에 와서 TV를 켜놓고 내일은 주말 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건강이 제일이지― 죽음은 자기 말에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는 그래, 신문에도 그렇게 났었지 하고 중얼거렸다

너를 위하여 - 김남조

나의 밤기도는 길고 한 가지 말만 되풀이한다. 가만히 눈을 뜨는 건 믿을 수 없을 만치의 축원(祝願). 갓 피어난 빛으로만 속속들이 채워 넘친 환한 영혼의 내 사람아. 쓸쓸히 검은 머리 풀고 누워도 이적지 못 가져 본 너그러운 사랑.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나의 사람아. 눈이 내리는 먼 하늘에 달무리 보듯 너를 본다. 오직 너를 위하여 모든 것에 이름이 있고 기쁨이 있단다. 나의 사람아.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내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점성술이 없는 밤 - 이장욱

별들은 우리의 오랜 감정 속에서 소모되었다. 점성술이 없는 밤하늘 아래 낡은 연인들은 매일 조금씩 헤어지고 오늘은 처음 보는 별자리들이 떠 있습니다. 직녀자리 전갈자리 그리고 저기 저 먼 하늘에 오징어자리가 보이십니까? 오징어들, 오징어들, 밤하늘의 오징어들, 말하자면 새벽 세 시의 아파트에서 밥 말리를 틀어 놓고 혼자 춤추는 남자 말하자면 지상의 모든 개들이 고개를 들고 우우우 짖는 밤에 말하자면 빈 그네가 쇠줄 끝에서 죽은 아이처럼 흔들리는 밤에 말하자면 별빛 같은 집어등을 향해 나아가는 외로운 오징어들의 밤에 그런 밤에, 별들은 어떻게 소모되는가? 오징어자리는 어디에 있는가? 새벽 세 시의 지구인들과 함께 음악도 없이 점성술도 없이 보이지 않게 이동하는 은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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