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리뷰/시와 글

충옥(蟲獄) - 장이지

zophobia 2024. 11. 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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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나그네가 내게 왔다. 마분지 날개를 달아매 주었다. 해바라기 꺾어들고 노래 부르며 난바다를 헤맸다. 캄캄한 밤 울음으로 빛나는 야경, 그 속의 키 작은 사람들을 보았다. 산동네 얼음 언 계단을 흰 꽃 토하며 오르내리던 가파른 목숨들을.
 
광막한 우주에 한 점 노래가 퍼지는 겨울이 가고, 별이 다시 꽃으로 내려와 앉는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다시 겨울이 가고, 나는 노래에 걸신들려 떠도는 조그만 제비였는제 나그네는 가뭇없이 떠나고......
 
  얼마나 걸어야 이 무궁(無窮)의 길은 그칠까.
  얼마나 더 걸어야 발이 사라지고 별이 될까
 
누리알 차갑게 튀는 길을 걷다가 문득 옛집에 이르러 애끊음이여. 지붕은 무너지고 아무도 없는 방에 그것이 있었다. 눈도 없고 다리도 없이 이상하게 처연한 몸부림으로. 노래를 불러주었더니 더 슬프게 꿈틀댔다. 먹을 것을 가져다주었는데 먹지 않았다. 내 유랑의 노잣돈을 펼쳐 보여주자 맹렬하게 먹었다.
 
가장 하찮은 것을 너는 좋아했구나. 내 노래가 너를 오그라뜨렸구나. 노래는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구나.
 
너는 이가 부러져라 쇠붙이를 지전을 먹고 있었다.
 
  가슴이 까맣게 타버린 벌레야,
  벌레야, 나는 더 독한 지옥이 되어야겠다.
  노래가 삭고 삭은 지옥이 되어야겠다.
  내 지옥이 너의 지옥보다 지독해져서
  혼자 버티고 서 있기도 어려워야겠다
  눈먼 절망이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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